맛집

곱창 답지 않은 곱창

elderseo 2011. 11. 7. 18:53

곱창 답지 않은 곱창
  2011/11/07 18:46
 

세상에... 곱창에 양파, 부추를 함께 넣고 거기다가 비린내 나지 말라고 후추와 들깨가루를 뿌려 익혀 먹다니...

이게 진정 서울 사람들이 좋아 한다는 곱창이란 말인가...

 

이런 재료를 넣고 과연 곱창 안에 숨어 있는 '꼽' 맛을 즐길 수 있을까?

후추를 넣고 싱싱한 창자가 발산하는 그 꼬들꼬들하고 고소한 맛을 즐길 수 있단 말인가?

 

거기다 옷에 기름이 튈 정도로 불을 세게 올려 구워 먹는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 맛있는 내장을 그렇게 망쳐먹는 방법을 자랑스럽게 떠벌리다니...

 

이제 쇠고기와 그 부산물을 제대로 먹을 수 있는 곳은 공룡처럼 멸종해가고 있다.

갓 잡은 소 간을 먹을 줄 아는 한국인도 참게가 사라져 가던 빈도로 줄어가고 있다.

 

대신, 그 싱싱하고 귀한 재료에 갖은 잡것을 넣고 맛있다고 우기는 글로벌 미각이 판치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소세지 같지도 않은 소세지를 먹이기 시작한 세대와 그걸 먹고 자란 세대가 무슨 맛을 알랴만...

길거리 오뎅과 떡복이가 원흉이지만 그걸 알 아낙들은 얼마나 될까.

먹기 위해 돈을 버는가? 돈 벌기 위해 먹는가?

주와 객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사람에게 있어 먹는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따져본 적이 한 번이라도 있는가?

 

 

 

곱창을 씻는 사람에게 웃돈을 얹저 주고서라도 싱싱한 곱창을 받아 옵니다. 웃돈이라도 얹어 주면 곱창 파는 사람은 나한테 줄 곱창 한 번이라도 더 빨아 깨끗이 씻습니다.

 

그 가게는 간과 천엽을 받는 날이 있습니다. 미리 얘기해 놓고 받는 날 전화 받고 가서 사면 됩니다.

 

채소는 큰 양파 2-3면 됩니다. 가장 좋은 것은 양파보다 대파 입니다. 흰 뿌리 부분을 굵고 길게 썰어 반으로 쪼개 펼쳐 놓으면 최고입니다. 참고로 곱창을 상추에 싸서 먹는 처참한 짓은 하지 마시길...

 

곱창은 받아 온 것을 약불과 중불 사이 불로 천천히 익힙니다. 가급적 무쇠솥뚜껑을 뒤집어 쓰면 좋지만 여의치 않으면 계란 프라이하는 팬도 좋습니다.

 

곱창에는 소주가 최곱니다. 이왕 돈 쓰는 거 이 참에 한 번 쓰는 것도 좋습니다. 안주가 좋은데 술도 좋아야죠. 대형 할인점에 가면 증류식 소주 만원 정도에 한 병 살 수 있습니다. 희석식 일반 소주와 분명 틀립니다.

 

친구건 가족이건 곱창이 익어 가는 동안 한 잔 씩 합니다. 대화와 곱창이 무르익도록 가축적이고 화기애매한 주제로 낄낄 대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이 때 만큼은 급한 승질 죽이고 천천히 오롯이 곱창이 익어가도록 하는 여유를 부려 봅니다.

 

곱창을 찍어 먹는 소스는 딱 한가지 입니다. 천일염입니다.

 

천일염을 곱창 굽는 한 쪽에 부어 놓고 작은 티 스푼으로 내 앞 접시에 덜어 먹으면 됩니다. 후추를 치는 무식한 짓은 하지 마시길. 적당히 코 끝에서 살짝 느껴지는 그 비린내를 즐길 줄 모른다면 곱창을 먹는 것이 아니라 소세지를 먹는 편이 낫습니다.

 

가위보다 잘 드는 과도로 똑똑 쉽게 끊어질 정도면 곱창은 내 입안에서 춤출 준비가 됐습니다. '꼽'이 그 특유의 육즙과 함께 잇 사이에 퍼져 나갈 즈음 술 한 잔을 털어 넣는 바보짓은 하지 마시길. 목구멍으로 넘어가면서 까지 발산하는 그 특유의 고소함을 즐길 줄 안다면 술 맛은 잠시 기다리는 것을 사양치 않을 겁니다.

 

곱창은 원래 쇠고기 조차 제대로 즐기지 못한 가난한 사람들이 먹던 재료입니다. 요즘처럼 냉동이 발달하지도 않은 시대에 그들은 곱창을 바싹 익혀 먹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약간 바삭 할 정도까지 익혀 보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분명 새로운 맛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비린내에 익숙치 못한 아이들에게는 약간 바싹 익힌 곱창 한 점을 잘 익힌 하얀 대파 부분에 싸서 입에 넣어 주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들도 그렇게 조금씩 새로운 고기 맛을 그들의 어린 기억에 축적해 갈 겁니다. 그걸 넣어주는 사람에 대한 추억과 함께.

 

재료가 좋으면 양념은 거의 필요치 않습니다. 곱창과 같이 파는 사람의 어마어마한 정성이 요구되는 재료를 즐기는 데 있어 싱싱함 이외의 양념은 잡것에 불과 합니다. '꼽'을 곱씹을 순 없지만 곱씹는 이상의 맛을 입 속에 남겨 줍니다. 질긴 창자를 그렇게 쫄깃하게 먹는 방법을 모르면 옷에 기름만 튀길 뿐입니다. 작은 불이라도 단단하게 발산하는 무쇠 솥뚜껑을 쓰라는 이유가 그래서입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익어 가는 것을 느긋이 참고 기다릴 줄 알면 남들이 즐기지 못한 맛을 즐길 수 있습니다. 먹는 거 앞에서 급한 승질을 죽일 줄 아는 것을 요구하는 것이 이 곱창입니다.

 

(조선닷컴 천둥번개님의 블로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