酒暴이 점령한 심야 응급실… 의료진 94% "난동 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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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특별취재팀
입력 : 2012.06.04 03:24 | 수정 : 2012.06.04 09:35
[주요 병원 응급실 르포]
심폐소생술 하는데 취객이 응급병실에 난입도
"주폭들과 씨름하느라 시급한 환자 진료 지장 받아"
◇주취자 난동에 의료진과 환자는 '공포'에 시달린다
지난달 31일 밤 12시쯤부터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실은 취객 하나 때문에 '전쟁터'가 됐다. 박모(48)씨는 3시간 가까이 의료진과 툭툭 밀며 몸싸움을 벌였다. 박씨는 처음에는 "팔다리가 안 움직인다"며 소리를 질러대다가, 진찰한 의사가 "별문제 없으니 가셔도 된다"고 하니 격분했다. 그는 "내가 아프다는데 이상 있으면 어찌할 거야. 내가 멀쩡하다는 걸 증명하도록 각서를 써내라"며 의료진을 밀쳤다.술 취해 얼굴 다친줄도 모른채 - 1일 새벽 1시 30분쯤, 술에 취해 넘어져 얼굴이 다친 것도 모른 채 길거리에 쓰러져 있던 이모(42)씨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의 부축을 받으며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실로 들어가고 있다. /김지호 객원기자 yaho@chosun.com
응급실에 누워 있던 50대 여성 환자는 몸을 떨다가 "저렇게 시끄럽고 술 냄새가 심한 환자는 빨리 쫓아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간호사에게 조용히 불평을 터뜨렸다. 옆 침상에 누웠던 이모(44)씨는 박씨를 잠시 쳐다보더니 고개를 애써 딴 데로 돌렸다.
응급실 근무 의사와 간호사는 물론 응급환자들에게도 '응급실 주폭'은 공포의 대상이다. 본지 전화 설문조사에서 지난달 응급실 근무 의료진 110명 가운데 19명(17.3%)이 취한 환자로부터 폭행을 직접 당했다. 의료진 5명 중 1명이 지난달 폭행당한 경험이 있는 셈이다. 대한응급의학회가 2011년 841명의 응급의학과 전문의 중 39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한응급의학회 전문의 총조사'에서 환자나 보호자로부터 폭언을 경험한 의사는 전체의 80.7%, 폭행을 당했다고 응답한 의사는 50%에 달했다. "생명에 위협을 느꼈다"는 의사도 39.1%에 이르렀다.
지난달 5일 여성 환자 한모(42)씨는 국립경찰병원 응급실에서 혈액 검사를 위해 피를 뽑자 "이 흡혈귀야. 내 피를 왜 빨아 먹느냐"며 난동을 부렸다. 한씨는 혈액을 뽑던 간호사의 팔이 벌겋게 부어오를 정도로 세게 비틀더니 주삿바늘을 뽑아 던졌다. 이후 그는 "흡혈귀가 내 피를 빤다"며 소리를 질러댔다. 병원 직원은 "술 취한 환자가 넘쳐나는 응급실이 정신병원 병실보다 더 두려운 곳"이라고 했다.
◇응급실 주폭, 다른 환자 생명까지 위협
일선 응급실 의사들은 취객들이 시급한 환자 진료에 방해되는 게 더 큰 문제라고 했다. 강북삼성병원 관계자는 "특히 밤 9~10시부터 들어오는 환자 대부분은 술에 취해 다치거나 소란을 피우다 들어온 환자"라며 "도심에 있는 병원일수록 술 취한 환자가 넘쳐 다른 환자를 볼 여력이 없다"고 했다.
길병원 전공의 장모(30)씨는 "심폐소생술을 하는데 30대 만취 남자가 자신의 여자친구를 찾겠다며 응급실 병실에 난입한 경우도 있었다"며 "자칫 위험한 순간을 가까스로 넘긴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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