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가 보니...
우리 집 안팎은 저녁 형 인간이라 딸이 일찍 회의가 없는 날이면
좀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 11시쯤 아침 겸 점심을 흔히 먹습니다.
오전 9시 전후 쯤 됐을까?
남편이 나를 급히 깨웁니다.
진땀을 흘리는 얼굴이 어딘가 몹시 아픈 얼굴이었습니다.
몇 십 년을 살아도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급히 세수를 하고 병원 갈 준비를 하였습니다.
사태가 심상찮아 보여 119를 부를까 하니 남편은 아픈 와중에도
극구 말립니다.
허둥지둥 집에서 가까운 종합병원 응급실로 갔습니다.
집에서 차로 20~30여 분의 거리가 천리 같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바늘허리 매어 못 쓴다'는 말을 절감하는 순간들
입니다.
차례를 기다려 번호를 뽑고 접수를 해야 하는 일이 급하고 초조해서
짜증납니다.
응급실을 가면 아무리 급해도 기본적인 검사, 채혈, 채변, X레이
이 세 가지는 통과의례입니다.
이 검사를 해야 병 증세의 가닥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지만 족히
세 시간을 기다려야 이 검사의 결과도 알 수 있어 아무리 급한 환자
라도 이 결과가 나오기 전까진 많이 다친 교통사고 환자 외엔
응급처치도 할 수 없어 고스란히 아픔을 감내할 수 밖엔 없습니다.
시각을 다투어 혈액용해제로 급히 서너 시간 안에 치료해야 할
뇌졸중 환자는 이럴 때 어찌할까란 생각이 듭니다.
세 가지 검사 중 소변검사에서 혈뇨가 보인다며 다시 CT촬영을 하
였습니다. CT검사 결과 '요로결석'이라고 하였습니다.
집에서부터 꼬박 다섯 시간을 아파서 쩔쩔 매다가 링거에 진통제를
넣었는지 통증이 차츰 멎었습니다.
'요로결석'이야 통증이 있어 그렇지 무서운 병이 아니니 일단 치료를
받으면 될 것입니다.
결과를 알기 전까지는 어찌나 겁이 났는지요.
서울에서 유수한 큰 종합병원은 응급실이 모자라 응급실 복도와 환자
들로 넘쳐 나 대기실까지 흡사 난민 수용소를 방불케 하였습니다.
시설도 좋고 의술도 세계 우위를 자랑하는 우리나라의 대형 종합병원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우리도 예외없이 너무 아파 누워도 어려운 사람이 서너 시간 동안 응급실
대기실과 복도에서 기대거나 앉아서 서서 서성거리다가 검사를 다 마쳤
습니다.
문득 새벽에 읽은 조선경제의 타이틀이 생각납니다.
'"대세는 호텔" 서울 도심 쇼핑몰, 극장 개조 붐'...
서울시내 건축 중인 지역별 호텔 수가 무려 40여 개.
외국인 관광객이 매년 100만 명씩 늘어 호텔이 부족해서라는 이야깁니다.
'호텔 개발에 참여하는 투자자들은 연 수익률이 7%이상이라서' 라는
보도입니다.
관광수입도 물론 중요하지만, 국민들이 급히 치료받을 권리는 기본적인
권리입니다.
병원 수입이 호텔보다 못 해 이런 현상이 빚어진다는 짐작은 갑니다.
병원 건립 참여자에게 혹은 개인종합병원에 응급실을 늘리는데 정부차원
에서라도 인센티브를 주어 고질적인 문제가 하루속히 개선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응급실 대기실이나 복도의 링거를 단 환자들은 얼추 50여 명은 돼 보입니다.
급한대로 응급실의 침대 5ㅇ여 개면 응급실 수를 다섯 개씩만 늘려도
피난민 수용소같지는 않을 것입니다.
서울시의 대형병원의 응급실은 어디나 사정이 비슷합니다.
사람사는 곳에 매일 급한 환자 없는 곳이 있을까요?
우리나라 종합병원의 의료기기 시설이나 의술은 세계 우위를 자랑합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종합병원 시설이나 의술과 난민수용소 같은 현실의
언밸런스는 어떻게 표현을 해야될런지요.
오늘 난민수용소 같은 곳에서 참으로 허둥댄 하루였습니다.
진통제 주사를 맞고 내일까지 진통제 약을 처방 받아 내일 낮 1시 30분
에 비뇨기과 진료를 예약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진통제를 맞고 조금 살아 난 남편이 납덩이 같이 창백한 얼굴로
비실비실 농담을 합니다.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읽었는지,
"결석은 선통(仙痛)이라고 한다네. 어찌나 아파 신선이나 참을 수 있다네."~~~
밤새 안녕이라더니...
갑자기 통증이 오고 혈뇨가 보인다면 '결석'도 의심하시구요,
밤사이 꼭 안녕들 하시길 바랍니다.

난민수용소 같은 환자 대기자실-
링거를 주렁주렁 단 환자들이 의자에 눕고 앉고 기대고 서고...

응급실 복도의 환자들- 휠체어나 침대라도 있는 환자들은 그래도 낳은 편...

서울 큰 종합병원의 응급실은 어디나 북새통에 난민수용소 같습니다. 정말 급한 환자들은 고스란히 피해를 볼지도
모릅니다. 그리 급한 환자가 아니라면 응급실로 바로 오는 것도 정말 급한 환자를 위해 지양해야 할 문제인
듯합니다.
[ 조선닷컴 '말그미'님의 블로그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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