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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끝자락에서

elderseo 2017. 12. 10. 20:39
삶의 끝자락에서 




2017년 8월 초, 한동안 선선하더니 다시 더운 날이 찾아왔습니다.
저는 환자 침대를 끌고 보호자와 함께 산책하러 나갑니다.
침대를 끌고 온 내 등에는 땀이 흥건하고 더운 바람에
땀을 식히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때 들려오는 환자의 한 마디.
"우와, 시원하다!"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자연 바람이 너무 좋았나 봅니다.
남들은 시원하게 나오는 에어컨 바람을 좋아하지만
한 달 가까이 병실에 있는 환자에게 병원의 에어컨 바람은
차갑게 느껴지고 심지어는 춥다고 합니다.

병실에서 수면 양말까지 신고 오신 환자는
햇볕을 쬐기 위해 양말을 벗고 이불까지 걷어
온몸으로 햇볕을 느껴봅니다.

보호자와 저는 너무 뜨거운 햇볕에
눈을 뜨고 있기조차 힘들어 그늘 밑에 앉아
말없이 환자를 바라봅니다.

환자의 행복한 모습에 산책 오길 잘했다 생각하지만,
옆에 앉아 있는 보호자는 간호사의 바쁜 시간을 뺏는 것 같아
미안하다며 안절부절못합니다.

하지만 올해 봄부터 밖에 나가지 못하고 병실에만 누워있던
환자분을 생각하면서 산책을 나왔습니다.

갑자기 햇볕을 쬐던 환자가 우릴 부릅니다.
"잠시만 도와주세요.
침대를 천천히 360도 돌려주시면 안 될까요?
지금이 하늘나라 가기 전에 마지막 산책이 될 것 같아서...
천천히 주위를 돌아보고 기억하고 싶네요."

너무 힘들고 슬픈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걸 아는데
환자의 한마디에 보호자와 저는 대답조차 하지 못하고
눈물이 가득 찬 눈으로 침대를 천천히 돌리고 있습니다.
천천히 환자가 주위를 둘러볼 수 있도록...

그리고 그렇게 2번의 산책을 더한 환자분은
사랑하는 아들과 딸, 배우자에 둘러싸여
행복한 표정으로 임종하셨습니다.

저는 날씨가 좋은 날에 침대에서만 생활하시는
환자를 모시고 산책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함께 하는 산책이 저에게는 소소한 일상이지만
그분들에게는 따뜻한 날이 되고 행복한 추억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국제성모병원 김정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