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없는 인간, 로봇 그리고 하나님
인간 자신 안에 감추어진 불순종의 죄악들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의 비극적 미래를 예상할 수 있다"
“지난 1월 12일 유럽연합(EU) 의회에서 주목할 만한 선언이 있었다. 인공지능(AI)을 가진 로봇의 법적 지위를 ‘전자인간’
으로 인정하고, 이를 로봇시민법으로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주요 원칙으로는 로봇이 인간을 위협해서는 안 되며,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고, 로봇 역시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는 항목들이 꼽혔다.” (한국일보 170304)
“(한국에서도) 지난 7월 19일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로봇기본법’ 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은 로봇에 특정
권리와 전자적 인격체로서 지위를 부여하고, 로봇이 인간의 윤리규범을 준수하도록 강제한다.” (프레시안 170719)
과학이 발달하면서 종교가 갖고 있는 신비적 매력이 점점 벗겨지고 그럴수록 인간은 ‘보이지 않는 존재’보다는 ‘보이는 것’
들에 더욱 매달리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은 신앙의 대상을 보이지 않는 것들에서 보이는 것으로 바꿔간다. 새로운
신(新) 종족의 출현으로서 바야흐로 로봇시대가 성큼 다가온 것이다.
로봇(robot)의 사전적 정의는 “사람과 유사한 모습과 기능을 가진 기계 또는 무엇인가 스스로 작업하는 능력을 가진 기계
로서, 스스로 보유한 능력에 의해 주어진 일을 자동으로 처리하거나 작동하는 기계”를 말한다. 만일 여기에 단서를 붙인
다면, 로봇이 만들어진 목적으로서 어느 면에서든지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는 것이라야 한다는 말을 첨언해야 할 것이다.
기독교 이외의 타종교와 기독교가 서로 다른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일까? 타종교는 인간이 신이 되고자 한다는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성불(成佛)의 개념이 그렇고, 뉴에이지(New-Age) 저변에 깔려 있는 신인합일(神人合一) 사상이 그
렇다. 사실 기독교의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용납하고 용서하시지만 하
나님의 자리를 넘보는 일만은 결코 묵과하지 않으시고 철퇴를 내리셨다. 바벨탑 사건이 그 대표적이며, 모세가 십계명
을 받기 위해 변화산에 올라간 사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것을 여호와 하나님으로 숭배하는 인
간의 패역함을 결코 간과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기독교는 인간이 신이 되고자 하는 타종교의 종교행위와는 달리, 신이 인간이 되어 인간의 모습으로 인간 세상에
내려왔다는 것이다. 신이 되고자 하는 성불(成佛)이 아니라, 인간이 되고자 하는 성육신(成肉身 incarnation)의 교리이
다. 그러므로 기독교에서 신을 닮아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최초의 인간 그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인간이 가장 인간됨을 지향할 때 비로소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
은 스스로 인간됨을 포기하고 신의 자리를 넘보며 계속해서 인간 스스로가 신이 될 수 있는 장치들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
다. 그것의 구체적인 현시가 로봇의 발명이다.
인간은 신이 되기 위해 로봇을 만들었다. 마치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셨듯 사람 역시 자신들과 유사한
모습과 기능을 가진 기계를 만들고, 자동적으로 움직이게 하였다. 더 나아가 마치 흙으로 빚어진 인간의 육체에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된 것처럼, 인간의 지능을 주입하여 로봇으로 하여금 인간처럼 사유하고 움직이게 인간화 작업
을 해나갔다. 인간의 가장 좋은 창조물로서의 로봇이 되기 위해서는 가장 인간을 닮은 로봇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 이외의 생물은 결코 인간과 같아질 수 없다. DNA의 염색체도 다르거니와 이 역시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
나님께서 직접 지으신 피조물로서 그 종류대로 각기 특성을 주셨기 때문이다. 인간을 이해하고 인간과 가장 가까운 반려
동물이라 할지라도 결코 인간의 지시 그대로만 움직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로봇은 다르다. 인간이 작동명령을 내린 그대
로만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로봇이 자체적으로 사유하며 판단하고 실행할 능력이 갖춰지고 자동적으
로 업그레이드 되어지는 시스템으로 만들어졌다면 나중에는 인간 이상의 지능을 자체적으로 개발수용하여 오히려 인간
을 지배하려 들지 않을까? 바로 이것이 인간의 필요에 따라 로봇을 만들면서도 로봇을 두려워하는 점이다.
SF작가로서 로봇 개발의 선구자로 불리는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의 대표작 <아이, 로봇 I, Robot>에서 전제하
는 ‘로봇 공학의 3원칙’은 위에 EU(유럽연합)에서 선언한 ‘로봇시민(기본)법'의 기초가 되었다. 로봇을 만드는 인간은 반드
시 위의 3원칙에 의해서 만들어야 하고, 또한 그 원칙의 순서들이 반드시 순차적으로 지켜져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이 순서가 지켜지지 않고 로봇의 지능이 최고로 발달하여 인간의 생명과 복지를 증진시키기 위한 것이기보다 로
봇 자체들의 안전을 위한 것이 우선될 때 어떤 현상이 나타날까 하는 것 또한 아직은 먼 이야기로 들리지만 언젠가는 이
과제 앞에서 인간이 해결해야 할 로봇 공학의 숙제로 남아 있다.
이러한 미래적 극단상황을 가상으로 만들어 낸 영화가 2009년 던칸 존스 감독의 <The Moon>이다. 영악해진 컴퓨터 로
봇이 인간을 조종하고 인간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그래서 인간과의 두뇌싸움이 시작된다. 2014년 가베 이바네즈(Gabe
Ibanez) 감독이 연출하고, 안토니오 반데라스(Antonio Banderas)가 주연 제작을 맡은 영화, 'Automata'(오토마타)
는 보다 리얼하게 미래의 비극적 상황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 영화는 아이작 아시모프가 제시한 ‘로봇 공학의 3원칙’을
응용하여 인간을 위한 보다 구체적인 두 가지 보호규정을 만들었음에도 로봇이 임의적으로 인간이 만든 보호규정
(protocol)을 어기어 문제가 발생된다. 아래는 필자가 나름대로 정리한 영화 시놉시스이다.
"앞으로 30년 후인 2044년 지구는 천체 이상징후인 태양 폭풍 증가로 인해 지표면이 방사능 사막으로 변했고, 인구는
99.7%가 감소되어 2천1백만 명만이 지구상에 살아남게 되었다. 인간은 이 위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자신들을 도울 수
있는 지능적인 로봇(Automata) 수백만 대를 개발하였다. 그러나 로봇 생산 과정에서 인간은 인간 자신들을 로봇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한 두 가지 보호규정(protocol)을 만들어 로봇이 인간의 명령에 따르도록 하였다. 그 첫째는, 로봇은 어떤 생
명체이든 해할 수 없다 (Prevents the robot from harming any form of life)라는 것과, 그 둘째는, 로봇은 자신이나 다른
로봇을 개조할 수 없다 (Prevents the robot altering itself or other robots) 라는 것이다. 그러나 "They are inalterabl
e!"(그들은 개조될 수 없다)라는 그들의 신념과는 달리 이 보호규정은 지켜지지 않았다. 로봇은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로
봇도 개조하는 일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들 사이의 근본적인 싸움이 벌어지게 되었다."
인류 최초에 하나님이 에덴에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 그리고 인간으로 하여금 모든 생물
을 다스리게 하시며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개조함 없이 그대로 보존토록 명하셨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께서 인간 자신
을 위한 보호규정을 만들어 주셨음에도 탐욕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했고, 그리고 살인까지 저지른다. 하나
님을 떠난 인간은 이후 문명을 계속 발전 승계하여 오늘처럼 인간의 지능을 닮은 로봇을 만들어 냈다. 그런데 로봇의 반
란이 일어났고, 전쟁이 시작되었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인간의 생각을 집대성하여 눈으로 보일 수 있도록 계발시킨 것이 로봇이다. 이것은 인간이 존재하는
한 끝없는 발전을 거듭할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수명 한계로 말미암아 중단될 수 있을지라도 수명의 한계를 모르는 로봇
은 이것 자체로 끝없이 정점을 향해 발전돼 나갈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로봇에게 적용된 보호규정은 하나님이 에덴에
서 인간에게 말씀하신 명령과 같은 것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인간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했듯이 로봇 역시 인간이 세
운 보호규정을 따르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비극이다. 그렇기에 인간 자신 안에 감추어진 불순종의 죄악들을 보면
서 우리는 우리의 비극적 미래를 예상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 인간에게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다.
지난 7월 11일 KBS 시사기획 ‘창’에서 <스페셜 ‘인간 신神을 꿈꾸다’>가 방영된 바 있다. 일본에서의 한 단면인데, 이들은
반려동물 대신 로봇개를 기르면서 낡아 고장나 못쓰게 된 불량품들을 그냥 폐기처분하여 버리는 대신 생물 반려동물처럼
절에 찾아가 제단에 불상 대신 '죽은 로봇개'를 올려놓고 불공을 드리며 ‘로봇개 합동 장례식’을 치러준다. 과연 생물 개
(犬)도 아닌 무생물 죽은 로봇 개에게도 영혼이 있다고 믿는 것일까? 이것을 보면서 나는 말할 수 없는 수치감과 인간의
가증스러움 그리고 신에 대한 두려움으로 몸을 떨었다.
아무리 로봇의 지능이 발달한다 해도 로봇에게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과 신앙심을 심어 줄 수 있을까? 로봇은 영이 없는 무
생물인데 로봇이 하나님 앞에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기 위한 예배자로 설 수 있을까? 아마 이것만은 절
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영혼 없는 인간, 로봇!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실상은 죽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하시니”
(눅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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