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초순, 늦여름의 쨍쨍한 햇볕 아래 고양시 화정역 광장에서 <2017년 고양시 생명사랑 자살예방 연합 캠페인> 행
사가 있었습니다. 지역의 자살예방을 위해 활동하는 15개 여의 여러 기관들이 참여하고 연합하여 광장에 각 부스가 설치
된 자리에서 각기 나름의 방식으로 자살의 심각성과 그 예방책을 마련하여 알리는 일에 수고하였습니다.
각 부스마다 나름의 특징이 있지만, 공통적으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은 이른바 '생명나무'입니다. 생명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색종이에 적어 그 나무를 장식케 하는 것입니다. 우리 부스에서도 똑같은 일을 했습니다. 매년 똑같이 반복되는
일임에도 이번 만은 내게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와 생명나무에 참여하는 분들을 유심히 관찰하게 되었습니다. 참여자는
대게 80의 노인네들이 많았습니다. 노인의 고독사를 예방하기 위해 그들의 생각을 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평소에 나
는 나 자신 노인측에 속하면서도 주위의 나이 많으신 노인들을 보면 '도대체 저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것일까?...'
하며 궁금했었는데 자연스럽게 대화의 창구가 열려 저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이 편에서 부스에 찾아오는 노인들에게 내주는 과제는 '살아가는 이유'를 적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노인들은 어린아이들
처럼 수줍게 웃으며 "뭐, 내가 살아가는 이유?...." 하고 되물으시면서 생소한 질문이라는 듯 재미있는 표정으로 응해주었
습니다. 그런데 나는 이들과의 접촉에서 내 나름의 안목으로 아주 특별한 하나의 현상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왜 사느냐?'
라고 살아가는 이유를 적으라고 말할 때 어느 노인은 잠시 난색을 표하며 생각을 짜내는 듯 하다가 '에라, 모르겠다!'하는
식으로 그냥 대충 한 마디 적고 맙니다. 지금 이렇게 늙은 몸뚱이 끌고 다니며 사는 것만도 힘에 겨운데 내가 언제 그런
골치아픈 것, 어차피 내 손에서 해결할 수도 없는 고민거리들을 애써 떠올리며 살 거 뭐 있느냐, 난 그런 것 생각해 본 적
없다... 는 식입니다. 그런데 이와는 반대로 어떤 노인들은 삶의 이유를 묻는 질문에 활짝 웃는 얼굴로 눈을 반짝거리며
금세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합니다. 마치 오랫동안 시험 준비를 해오다 시험장에서 문제지를 받아들고, '어~ 이게 내가
공부한 문제네?' 하며 좋아라 답안지를 채워나가는 학생처럼 말입니다. 아래에 금세 글을 써내려간 몇몇 쪽지 글들을
옮겨 봅니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말씀 안에서 영생을 갖고 전도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 하나님의 영광과 내 인생의 진정한 승리를 위해 삽니다. 할렐루야!
/ 하나님 주신 생명, 너무 귀하고 소중해서 감사하고 기뻐하며 삽니다. / 새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 하나님이
주신 생명 신중하게 살아가렵니다. / 나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다. / 하나님의 구원을 두려움으로. / 천국백
성으로서의 복된 삶."
물론 대부분의 쪽지 글들은 저승사자가 데리러 오기까지 건강하게 장수하며 사는 것과 사랑하는 가족들의 행복을 바란다
는 내용이 주종을 이루었습니다. 그 중에 아주 재미있었던 것은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마치 일본 쓰모 선수처럼 뚱뚱한 청
년이 한참을 고민하더니만 써서 부친 쪽지였는데, 거기엔 "그냥 생물로써 권리가 주어졌기 때문."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노인들은 무엇을 비우고 또 채우며 살아갈까요? 이것은 무엇을 준비하며 살아갈 것인가 하는 질문과 같습니다. 비우든 채
우든 이 모든 것이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취하는 행동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번 행사에서 만나게 된 어느 84세 할아버지
의 음성이 오랫동안 메아리 치듯 내 가슴에 울려왔습니다. "난 운동도 열심히 해서 몸도 건강하고 아직 살만 합니다. 그런
데 마음이 너무 어렵습니다. 자식들 사는 것도 맘에 안 들고, 얼마 전 세상 떠난 아내를 잃고 난 후 혼자 사는 것이 정말 지
겹습니다. 매일 매일 아침에 일어나 밥차려 먹고 오늘은 무슨 일로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하나... 하는 일상의 반복이 너무
권태롭고 지겨워 힘듭니다. 때로 책을 읽고 어떤 일에 몰두하면 괜찮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고 보통 때는 이 지겨운 권태
의 삶을 얼마나 더 지속해야 하나 하고 때로 자살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게 두렵기도 하고요... "
이미 비어 있는 그릇은 더 비울 것이 없습니다. 이젠 채워야 할 때입니다. 그러나 비어 있는 그릇에 채워야 할 것이 무엇
인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 세상에서 먹고 싶고, 입고 싶고, 가보고 싶은 것 다 가보고 해보았습니다. 나름대로 버킷
리스트(bucket list) 도 만들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흉내도 내보았습니다. 그런데 하고 싶은 것 끝냈을 때 내 삶도
함께 끝나는 것이면 차라리 좋을 텐데, 그 후에도 더 살고 있기 때문에 이번엔 무엇을 더 해야할지 몰라 답답하다는 것입
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다시 채워야 할까요? 혹 아직도 비울 것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닌가요? 사실 비운다 하면서도 아
직 내 안에 뭔가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에 마땅히 채워야 할 것들을 채울 수 있는 여백을 확보하지 못한 때문이 아닌가요?
세상에 속한 것들은 그 어느 것 하나라도 천국에 갖고 들어 갈 수 없습니다. 내 영혼과 더불어 천국에 올라가는 것은 3가
지 뿐입니다. 기도의 향기가 올라갑니다. 항상 기뻐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삶의 찬양이 올라갑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내
이웃을 향해 섬기고 베푼 사랑의 무지개만이 올라갑니다. 이것들은 우상으로서의 세상적인 탐심을 버리고 비운 후에 우
리 안에 새롭게 채워나가야 할 것들입니다. 이것들은 채우고 채워도 배가 부르거나 소화불량에 걸릴 일이 없습니다. 채
울수록 비어 있는 듯하여 겸손히 엎드리며 더욱 채워나가기를 소망하게 되는 아주 귀한 생명의 요소들입니다.
우리 모두 그렇지만, 노인이 될수록 비우고 채워야 할 것들을 더욱 분명히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제 천국 여정길에 내
발목을 붙잡는 거침돌이 되는 불필요한 것들은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 비운 그릇에 천국에 속한 것들로, 성령
으로 충만하게 채워야 합니다. 이 준비는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해야 하는 것이지만, 이제 천국문에 가까이 이
르는 노인일수록 더욱 긴박성을 느끼며 준비해야 하는 것들입니다. 천국 문 앞에 이르러 "너는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왜 살았느냐?"라는 질문에 뒷머리를 긁적이며 엉거주춤 횡설수설 한다면 이는 낭패입니다.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내가 오늘 이 순간을 위해 피터지게 믿음의 싸움으로 준비해 온 것임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곧바로 시원스런 답변을 토
해내야 합니다. 위에서 천국 소망에 대한 믿음의 결연한 태도로 확고하게 '내가 살아 온 이유'를 말할 수 있었던 그 흘륭
한 어르신들처럼 말입니다.
높이 치솟은 원형의 건물들 한가운데 파란 하늘이 보입니다.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이는 건축물의 윗 부분은 비어 있
는 것입니까? 아니면 하늘로 채워져 있는 것입니까? 내가 잠시 여유를 갖고 비웠다고 하는 그곳이 사실은 내가 알지 못
하는 그 무엇인가로 가득 채워져 있는 것입니다. 하늘이 그렇습니다. 항상 하늘을 바라보는 습관을 기르고, 내 머리 위에
하늘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나는 그래서 매일 아침마다 새벽기도회를 위해 교회 문을 들어서기 전에 새벽 하늘을
한동안 바라보며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고 내가 땅에 있으며, 내 머리 위로는 항상 하늘이 있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곤
합니다. 그러면 답답하던 마음이 시원해지고 뭔가 든든한 그 무엇이 내 안을 꽉 채우고 있음을 느낍니다. 지금 당장 밖에
나가, 아니면 창문을 열고 하늘을 올려다 보십시오. 무한하며 신비롭기만 한 하늘이 우리 위에 있습니다. 언젠가 내가 돌
아갈 내 본향집이 그곳에 있습니다. 하늘나라, 하나님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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