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다른 엔딩 노트
일본 영화 ‘엔딩 노트’는 말기암 판정을 받은 아버지의 마지막 6개월을 막내딸인 영화감독이 영상으로 그려낸 다큐멘터리다.
40년 넘게 샐러리맨으로 살아오며 일본 산업화의 주역이라고 자부하던 주인공 스나다 도모아키씨는 요즘 나이로 한창이라는 69세에 위암 말기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충격도 잠시. 주인공은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죽음에 대한 준비를 인생의 마지막 과제로 삼아 하나씩 실천에 옮긴다.
신(神)을 믿기 위해 천주교로 개종하기, 미국에 살고 있는 손녀들과 마음껏 놀아주기, 생존해 있는 94세 노모와 가족여행을 다녀오기, 그리고 자신이 주인공이 될 장례식의 장소섭외와 절차를 꼼꼼히 챙기는 일까지…
살려고 발버둥치기 보다는 점점 다가오는 슬픈 운명을 담담하게 받아 들이며 자신의 부재(不在)가 가져다 줄 고통과 혼란을 최소화하려 애쓴다. 자신보다는 가족을 배려하려는 노력 덕분에 그의 엔딩(ending)은 절망스럽기 보다는 공감가는 의미있는 시간으로 남았다.
이 평범한 소시민의 마지막 여정은 고령화 시대의 화두가 되고 있는 ‘웰다잉(well-dying)’의 좋은 사례로 보인다. 나아가 살아가면서 직면하게 될 수많은 과정들의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다’는 경구(?)는 비단 고속도로 휴게소의 화장실에서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자신이 갖고 있던 모든 걸 내려 놓아야 하기 때문에 가진 게 많을수록, 높은 자리에 있을 수록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
얼마 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스스로 물러나겠다고 발표했다. 측근의 비밀문서 유출과 사제들의 성추문으로 곤혹스런 처지라는 분석도 나오기도 했지만 교황의 사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교황은 종신직이고 인종과 종파를 뛰어넘어 전 세계인의 존경을 받는다. 성좌(聖座)를 스스로 내려오는 것은 특별한 용기와 자기 성찰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지난 598년간 자진해서 재위에서 물러난 교황이 없었다.
교황은 “고령으로 인해 능력이 교황의 직무 수행에 더는 적합하지 않다고 확신했다”고 사임이유를 밝혔다. 가톨릭 교회의 안정에 도움이 된다면 자신이 물러나는 게 ‘의무’라고까지 생각했던 소신을 실천에 옮긴 것이다.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도 엊그제 사퇴했다. 인사청문회에서 드러난 각종 의혹과 도덕성 시비로 인해 사법기관 수장이 되기에는 부적절하다는 건 이미 결론이 난 사안이었다. 하지만 “스스로 물러나지 않겠다”며 41일을 버티다가 여론의 압박에 밀려 결국 물러났다.
교황과 헌법재판소장직의 무게감을 단순 비교하는 건 무리다. 하지만 존경과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점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교황은 자신을 내려 놓으며 전 세계인의 공감을 얻었고 이 후보자는 자신이 살려고 하다가 국민들의 반감만 샀다.
이달말 물러날 이명박 대통령의 ‘엔딩’도 아름다워 보이지는 않는다. 임기를 채 한달도 안남기고 비리 측근들의 셀프 사면을 밀어 붙이더니 이번 주초에는 대통령 부부 자신에게 제작비만 1억원 가량이 드는 무궁화대훈장을 수여키로 하는 결정을 내렸다.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일한 대통령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할 정도이니 셀프 훈장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그런 자부심에 공감하지 않는 많은 국민들에겐 자괴감만 안겨준다.
곧 새 정부가 출범한다. 대통령이 직간접적으로 임명할 수 있는 자리가 많게는 1만개 넘는다고 하니 마무리를 생각해야 할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처신하든 남들이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마무리가 깔끔하면 기회는 다시 오는 법이다.<방송에디터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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