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밤 거룩한밤의 내력
♣ 고요한밤 거룩한밤의 내력 ♣
우리는 해마다 크리스마스를 전후하여 많은 캐럴송을 듣지요.
그런데 200년이 넘도록 변하지 않고 불리는 캐럴송이 있어요.
그것이 바로 '고요한 밤 거룩한 밤(silent night)'이라 하네요.
이 캐럴송은 해마다 크리스마스를 전후하여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불리는
캐럴 중 하나 이지요.
이 노래의 발상지는 오스트리아의 음악 도시 잘츠부르크에서 약 20km 떨어진
오베른도르프(Oberndorf)라는 조그마한 마을이지요.
<오베른도르프 마을과 니콜라우스 교회>
이 마을은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국경에서 자동차로 약 20분 거리에 있는데
모차르트의 출생지이기도 한 이곳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촬영지 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해마다 대림 절기가 되면 세계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데
그들은 바로 '고요한 밤'의 태동지를 방문하기 위한 성지순례객들이라 하네요.
< 성 니콜라우스 교회>
1800년대초 이 마을에는 요셉 모어(Joseph Mohr)라는 가톨릭 사제와
프란츠 그루버(Frantz Gruber)라는 교사가 있었어요.
음악의 도시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난 모어 신부는 이 마을의 성 니콜라우스(Saint nicolaus)성당에서 1817년부터 1819년까지 사제로 재직했으며 그루버 교사는 이웃 마을인 아른스도르프에서 1807년부터 1829년까지 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성 니콜라우스 성당에서
오르간 반주를 맡아 일하고 있었지요.
그러다보니 두사람은 자주 얼굴을 맞대며 자연스럽게 가까워졌어요.
그런데 성탄절을 앞두고 성당에 하나뿐인 오르간이 고장이 났어요.
앞으로 일주일 후면 성탄 예배도 드려야 하고 연극발표회도 해야 하는데
단 하나뿐인 오르간이 고장나 버렸으니 두 사람은 난감했지요.
그래서 두 사람은 오르간을 고치려고 이리저리 뜯어보고 고치려 애를써 보았지만
시골에서는 수리하기도 어려웠고 새로 구입할 형편도 못 되었지요.
그래서 Mohr 신부는 그루버 선생에게 오르간 없이 무엇인가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어요.
이에 대해 그루버도 좋은 생각이라며 찬성을 했고 이 제안은 곧 실행에 옮겨졌지요.
Mohr 신부는 시골 사람들이 조용하게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며 부를수 있는 노래를 만들기로 했지요. 그는 해마다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느꼈던 감정을 그대로
'고요한 밤 거룩한 밤(Stille Nacht Heilige Nacht)'으로 시작되는 노랫말을 지었어요.
이 노랫말은 6절로 되어 있었지요.
Mohr 신부는 이 노랫말을 성탄 전일인 12월 24일 그루버 선생에게 전하면서
두 명의 솔로 그리고 기타 반주를 곁들인 합창에 맞도록 곡을 만들어 줄것을 부탁하였지요.
노랫말을 받고 난 그루버는 그의 탁월한 음악 소질을 발휘하여 바로 그날 곡을 만들었어요.
성탄 전일의 조용하고 거룩한 뜻을 담고 있는 가사에 어울리는 곡이었지요.
Mohr 신부는 이 곡을 접하고 무척 마음에 들어했어요.
이렇게 해서 이 노래는 두 사람의 공동 노력으로 오베른도르프의 성 니콜라우스교회에서
곡을 만든 당일인 12월 24일 저녁 미사 도중에 처음으로 불리게 되었지요.
물론 미사에 참석한 모든 신자들로부터 뜨거운 환호와 갈채를 받으면서 ...
이날 Mohr 신부는 기타를 치면서 테너를 맡았고 그루버 선생은 베이스를 맡았으며
교회 합창단이 후렴을 불렀는데 그 후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은 매년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이 교회에서 불리면서 점점 널리 알려지게 되어 차차 전 세계로 보급되었다 하는군요.
이후 1937년 8월 15일 성 니콜라우스교회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의 노래를 만든
Mohr 신부와 그루버 두 사람을 기념하기 위해 교회이름을 '고요한밤성당(Stille Nacht Kapelle)'으로 바꾸었다 하는군요.
이 '고요한 밤'은 현재 130개 언어 193개 버전으로 번역되어 널리 불린다 하지요.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캐럴을 널리 확산시킨 사람은 독일 디아코니아 운동의 선구자인
요한 힌리히 비헤른(Johann Hinrich Wichern, 1808~1881)이라는 사실이지요.
비헤른은 이 캐럴을 디아코니아 운동의 발원지였던 할레에서 알게 되었는데 1844년 비헤른이 찬양집에 처음으로 이 캐럴을 싣게 되었어요.
1877년까지 이 노래는 5판을 출판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는데 한번 펴낼 때 수천부씩 발간했다 하네요.
이러한 확산에 직접적으로 가담한 이들은 디아콘(Diakon)이었지요.
디아콘이란 우리 한국 개신교에서는 생소한 이름인데 독일이나 세계 여러나라 교회에서는 아주 일반화된 기독교의 직제이지요.
옛날 초대교회에서는 말씀에 봉사하는 사도와 사회적 약자들에게 봉사하는
즉 디아코니아를 담당하는 디아콘이 있었지요.
비헤른은 바로 이러한 디아콘 제도를 근대교회에 도입한 인물이라 할수 있어요.
그들은 현재 독일 교회나 기독교 사회복지시설 그리고 사회 선교 현장에서 전문성과 고백성을 담지한 디아코니아 실천가로 일하고 있지요.
(디아콘이 되려면 디아콘 학교에서 사회복지학과 디아코니아 신학을 4~5년 배워야 되지요)
흥미 있는 것은 비헤른이 독일어권에 이 캐럴을 확산시킬때 자신이 가사를 조금 변경하였는데
일례로 Joseph Mohr는 일반적으로 '예수'를 가사에 썼는데 비헤른은 '그리스도'를 덧붙였지요.
그리고 일반적으로 우리가 이 캐럴의 제목을 "고요한 밤 거룩한 밤"으로 알고 있지만
비헤른은 제목을 "그리스도 안의 기쁨"이라 붙였다 하네요.
지금도 독일 찬송가나 "헤른후트 형제단" 찬송가는 비헤른의 가사를 싣고 있는데
여기에 그 원문을 번역해 올렸어요.
1.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모두들 잠든 밤
외로이 주의 부모만 깨어 있네.
곱슬머리의 예쁜 아기가 하늘의 안식 가운데
잠들어 있네. 하늘의 안식 가운데 잠들어 있네.
2.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천사들의 할렐루야로
목동들이 먼저 알게 되었네.
멀고 가까운 곳에서 크게 소리가 들린다.
구주 예수 나셨다. 구주 예수 나셨다.
3. 고요한 밤 거룩한 밤 하나님의 아들 방끗
웃으며 은총의 입으로 사랑이 피어나네.
이제 구원의 시간이 우리에게 온다.
구세주 나셨도다. 구세주 나셨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