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갇힌 신앙
성경에 갇힌 신앙
표지가 닳아져 너덜거리는 내 성경책을 손으로 한번 쓰다듬어 봅니다. 참으로 만감이 교차하는 군요. 저는 거의 평생 성경 안에서 살아왔습니다. 이 성경이 저를 살렸습니다. 성경은 사람을 살리는 책입니다.
그런데 간혹, 성경이 사람을 죽이는 책으로 사용되는 것을 봅니다. 어떤 사람은 성경 책에 글자를 한 글자 한 글자 짚어가며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고 목숨을 겁니다. 심지어 한글개역성경을 유일한 성경으로 보고 다른 번역은 이상한 것이라고 하는 분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면, ‘성경 원본’은 없습니다. 아직까지는요.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사본’입니다. 원본을 그대로 베껴 쓴 책을 또 다른 사람이 베껴 쓰고, 그걸 또 다른 언어로 번역하고, 또 그걸 다른 방언으로 바꾸고, 또 바꾸고, 또 바꾸고.... 앞으로 또 바뀔 것입니다.
성경 ‘원본’은 일점 일획이라도 바꿀 수 없겠지만, ‘사본’은 시대에 따라 문장 자체를 통으로 바꾸기도 합니다. 아무리 성경원문이라고 떠들어도 그것은 정확히 말하면 사본의 원문일 뿐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원본’을 보존해서 남겨주시지 않으셨을까요? 아마도 사람들이 성경을 우상처럼 ‘숭배’할 것이 뻔 하니 아예 없애버리셨을 겁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소개하는 ‘메뉴얼’같은 책입니다. 매뉴얼을 숙지했다면 매뉴얼을 버리고 그 제품을 잘 사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을 통해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면 하나님과의 만남과 관계에 집중해야 합니다. 가끔씩 막힐 때 매뉴얼을 펼쳐보면 됩니다.
하나님은 성경 밖에서 나를 바라보고 계시는데, 성경에 눈과 코를 박고 있으면 하나님을 볼 수 없다는 것이지요. 신앙이 ‘성경 안에’ 갇히면 성경 밖의 하나님을 모르게 됩니다.
ⓒ최용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