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에 까지 가져가고픈 물건-버려야 할 때
무덤에 까지 가져가고픈 물건-버려야 할 때
추억이 깃든 물건은 생각만큼 소중하지 않다.
무소유의
대부로 알려진 법정스님.그 분 이라고 왜 일생을 살아가면서 소중한 것이 없었겠는가. 법정스님의 글 한 대목이다.
지난해 여름 장마가 갠 어느 날 봉선사로 운허노사를 뵈러 간 일이 있었다. 한낮이 되자 장마에 갇혔던 햇볕이 눈부시게 쏟아져 내리고 앞 개울물 소리에 어려 숲속에서는 매미들이 있는 대로 목청을 돋구었다.
아차! 이때에야 문득 생각이 난 것이다. 난초를 뜰에 내놓은 채 온 것이다. 모처럼 보인 찬란한 햇볕이 돌연 원망스러워졌다. 뜨거운 햇볕에 늘어져 있을 난초 잎이 눈에 아른거려 더 지체할 수가 없었다. 허둥지둥 그 길로 돌아왔다. 아니나다를까, 잎은 축 늘어져 있었다. 안타까워 안타까워 하며 샘물을 길어다 축여주고 했더니 겨우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어딘지 생생한 기운이 빠져버린 것 같았다.
나는 이때 온몸으로 그리고 마음속으로 절절히 느끼게 되었다. 집착이 괴로움인 것을, 그렇다, 나는 난초에게 너무 집념해 버린 것이다. 이 집착에서 벗어나야겠다고 결심했다. 난을 가꾸면서는 산철(승가의 遊行期)에도 나그네길을 떠나지 못한 채 꼼짝 못하고 말았다. 밖에 볼일이 있어 잠시 방을 비울 때면 환기가 되도록 들창문을 조금 열어 놓아야 했고, 분을 내놓은 채 나가다가 뒤미처 생각하고는 되돌아와 들여놓고 나간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말 지독한 집착이었다.
며칠 후, 난초처럼 말이 없는 친구가 놀러 왔기에 선뜻 그의 품에 분을 안겨주었다. 비로소 나는 얽매임에서 벗어난 것이다. 날듯 홀가분한 해방감. 3년 가까이 함께 지낸 '유정(有情)'을 떠나 보냈는데도 서운하고 허전함보다 홀가분한 마음이 앞섰다. 이때부터 나는 하루 한 가지씩 버려야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했다. 난을 통해 무소유의 의미같은 걸 터득하게 됐다고나 할까.
삶은 집착의 연속이다. 그것도 무한대의 아날로그 처럼.
10대 후반 대학 생활중에서 선택으로 들었지만 어떤 과목보다도 기억에 남던 함수론 수업중에 고등학교에서 잠깐 배운 무한 급수의 극한값, n…
이걸 체계적으로 세 달에 걸쳐 배울때 온 몸에 전율이 돋았다. 같이 수업듣던 여학생을 곁눈질 하려고 일부러 뒷자리에 앉았던 내가, 한 달이 지나면서 부터는 맨 앞자리에 앉아 백묵가루를 원없이 마시고 있었다.
그 때도 극한값에 무소유를 대입하면 어떤 파라볼라가 그려질까 궁금했었다.
무덤에 갈 때 가져가고 싶은 걸 적어본다.
시집 한 권,
아이들 사진,
그리고 와이프의 야한 속옷 한 벌 가져가고 싶다.
이렇게 생의 소풍길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나는 Minimalism 을 비껴간다. 오호 통재라.